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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9 19: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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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이야기를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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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 먹은 김치찌개가 좀 짰네. 그래서 그런가 물을 그렇게 많이 마시게 되더라고?
그거 건들지 마. 여드름 생겼다고 맨손으로 짜고 그러면 그거 되게 안좋아. 나중에 피부 모공
엄청 넓어진다? 니 친구 진서 있잖니. 어렸을 때는 그렇게 예뻤는데 여드름 생겼다고 막 짜고 그러니까
나중에 얼굴 엉망 됐잖아.
너네 아빠는 입만 열면 돈 아끼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댄다. 어젠 글쎄 차에 기름 떨어져서 주유소에서
카드 긁은거 가지고 뭐라고 하더라니까? 그래서 엄마가 그랬지. 차를 이로 끌거냐고. 그랬더니 세상에
내가 무슨 백화점 가서 십년전에 산 오백만원짜리 가방 그거가지고 또또또 한마디를 안지려고 아주!
그래서 어제 엄마가 너 데리러 가려다가 아빠랑 싸우느라 못나간거 아니니 글쎄. 십몇년동안 같이 살면서
한번도 곱게 넘어간 적이 없다. 얘 나는 너 결혼하는것 까지만 보고 너네아빠랑 갈라설란다.
여드름 그거 자꾸 건들지 말라니까? 집근처에 에스테틱 새로 생긴데 있지? 이따 학원 끝나고 엄마랑 거기좀 가자.
태경이 엄마 남편이 집에서 놀면 뭐하냐고 차려줬다더라. 너네 아빠는 그런 머리가 없어. 융통성이 없다니까?
수시 합격하기전에 준비 잘 해. 합격하고 나서도 그래. 낯선데 가서 생활하게 될텐데, 그런데 가서 기죽고 그러지마.
내가 너네아빠랑 내가 허리를 졸라매서라도 기 안죽게 할테니까. 거기가 어디 보통 대학이니? 합격만 해. 엄마가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줘.
그리고 할머니한테 좀 가라고 엄마가 몇 번을 말하니. 병원도 가까운데 2차 시험만 준비하면 된다며. 그러면 남는
시간에 가서 할머니 손도 좀 잡아드리고 하면 얼마나 좋니. 내가 글쎄 너네 할머니 암 발견됐다고 했을때 억장이
다 무너졌어. 자식이란게 그런거야! 다행히 나이에 안맞게 회복속도가 빠르다고 하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말년에 무슨 고생이니. 니가 하나밖에 없는 손녀인데 가서 애교도 좀 부리고 할머니 빨리 나으세요 하면 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겠니. 응? 엄마는 어렸을 때 부터 할머니 말 곧이곧대로 듣고 자랐어. 넌 근데 뭐니?
여자애가 남자애들하고 어울려서 게임방같은데나 다니고, 엄마가 너 그러라고 용돈 주니? 제발 또래 애들하고 맞게
놀아. 여자애가 선머슴같이 놀고 다니면 안좋은거야. 옛날 어른들 말씀 틀린거 없어.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해야 지 일도 잘 풀리고 그러는거야."
"아 엄마 잠좀 잘래!"
"넌 엄마가 말을 하면 귓등으로 듣는 척이라도 좀 해! 애비나 딸이나 둘이 어찌 그렇게 똑같니?! 너도 너같은 딸
낳아봐야 엄마가 얼마나 힘든건지 쥐똥만큼이라도 알거다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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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34평 롯데캐슬 103동 201호
화장실에서 여드름을 짜는데, 와이프가 문을 열고 묻는다.
"내가 짜 줄까?"
장난스런 모습으로 '창고에서 전기톱을 발견했는데, 작동법이 좀 낯설어서, 자기한테 한번 시험해보려고'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와이프의 모습이 사랑스럽지만, 지난번 면도를 대신 해 준다면서 입술을 잘라버린 통에 며칠동안
공구상을 찾아다니며 성인남자용 2호 남자입술을 구하느라 진땀 뺐던 것을 생각하면,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와이프는 이미 전기톱을 작동시킨다. '아얏' 전기톱이 부르릉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와이프가 자신의 잘린 검지손가락을 찾아다닌다. 그 사이에 전기톱은 온 사방을 돌아다니며 tv를 부수고, 진열장을 부순다.
아랫집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또 올라올지 모르니 검지손가락은 나중에 찾고, 전기톱부터 끄라고 했다.
항상 이런식이다. 연애할 때 눈에 식염수를 넣는다며 청소용 세제를 넣는 바람에 눈알 한짝이 두개골 안으로 사라져
안과에 찾아가 곤욕을 치른 일 같은건 예사고 장모님에게 어버이날 대형 바퀴벌레를 애완용으로 선물해 드렸다가
온 집안이 바퀴벌레로 뒤덮여 한동안 바퀴벌레를 저녁으로 먹었던 일 같은걸 생각해보면, 왜 저렇게 덜렁거리고 살까
한숨도 들지만 아무튼 나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와이프다.
"자기야! 큰일났어!"
별안간 와이프가 호들갑을 떨며 다시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와이프가 들고 있던 양말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새로 사온 천원에 다섯개들이 양말 한짝이 전기톱에 찢겨 발 뒤꿈치 부분에 구멍이 난 것이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지손가락 정도는 오공본드로 붙이면 그만이지만, 구멍난 양말을 다시 기우려면
바늘에 실을 꽂는것이 너무 끔찍하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둘러 전기톱을 끄고, 와이프 손가락을 급히
본드로 붙여 제자리에 가져다 놓은 다음 양말을 보자기에 싸서 명지병원 응급실로 향하기로 했다.
양말이 제 시간에 회복되어 내일 아침 신게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급하게 차키를 찾으러 안방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