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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17: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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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3형제는 겨울방학을 맞아 포경수술을 했는데, 큰형과 내가 비교적 이른 시간에 정상생활로 돌아간 반면 작은형은 유독 정상생활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작은형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병상에서 상하이 조에게 두들겨 맞는 심영처럼 고통스러워했다.
운명의 예비 소집일... 그 날 형의 모습은 고통스러운 수난받는 순례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작은형은 치마를 입을까 고민하다 결국 엄마의 몸빼를 입고 등교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바지를 들으며 조금이라도 스치기만 해도 전기고문 받는
사람처럼 부르르 떨며 걷는 형을 친구들이 적나라한 용어를 사용하며 놀려댔다. 내가 아무리 옆에서 "우리 형 놀리지 마!" 라고 해봤자 소용없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조금 더 놀려라!! 왜 이럴 때 형이 짝사랑하는 그 누나는 왜 없는 것인가!" 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운동장에 학년별로 줄을 섰을 때(시골학교라 학생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마이크를 잡은 선생님께서
"야! 거기 5학년 주머니 손 넣고 짝다리 짚고 있는 놈 너 나와!!" 라고 외치셨다. 나를 비롯한 전교생이 5학년 줄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엄마 몸빼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작은형이 서 있었다.
작은형은 '도대체 어떤 놈이 건방지게 주머니 손 넣고 있는 거야!' 하는 눈빛으로 앞 뒤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건방진 놈이 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형은 앞으로 나가면서 아픔을 참으며 아무 일 없는 듯(절대 포경수술을 받은 사람이 아닌 척) 천천히 걸어나갔다.
"너 이 자식 자세가 왜 그래?"
"제가요.. 고래를...."
"뭐?? 뭐라고? 안 들려 크게 말해봐!"
"제가 포경수술을 했습니다!"
문제는 마이크가 켜져 있는 상태였다. 형은 전교생에게 본인의 포경수술을 본인의 입으로 말했다.
그리고 형은 6학년 졸업할 때까지 '깐죽' 과 비슷한 단어로 불리게 되었다. 쯔쯔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