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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 2011-04-16 14:26:37 0
답이 없는 환빠. 이들은 예수쟁이 개독이랑 동급 [새창]
2011/04/16 14:03:45
몇몇 그런 사람들이 보일지 모르겠지만, 현재 게시판 활동하는 대다부의 분들은 그렇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어 선택을 좀 신중하게 해주셨으면 하네요. 잚소된 글이라면 그 잘못되었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될 일입니다. 거기에 상대방을 비난 하는 어조를 남발하는 것은 좋지 못한 자세 같네요.
603 2011-04-16 14:24:11 0
[새창]
당신같은 디씨 역겔 사람들 반기는 사람이 있나?
그냥 오지마세요. 하는일이라곤 썼던글 보류가면 다시 도배글 올리는것 밖에 없는 사람이 뭐가 좋다고 반길꺼라 생각하는건지..
602 2011-04-16 14:19:00 0
게시판 분위기가 점점 나빠지는것 같군요. [새창]
2011/04/16 12:38:32
하하하ㅤㅎㅏㅎ/
네. 디씨 역겔에서 온 사람들의 도배가 가장 문제죠. 낮이고 밤이고 같은글 반복해서 올리니 원..
601 2011-04-16 14:14:20 0
아 재야사학 아저씨들 그만좀해요 [새창]
2011/04/16 14:10:32
노블레스 이사람은 새벽엔 책사풍후랑 짝짜꿍만 하더니 오늘은 어인일로 다른사람 글에 댓글도 다시네요.
600 2011-04-16 13:09:33 0
삼국지 군주들의 정치성향이 궁금합니다 [새창]
2011/04/16 11:01:45
개걸음/
이공범 교수의 위진남북조사 중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대의 관료 임용은 삼공, 구경, 군 태수, 현령, 장 등 녹봉 2백성 이상의 관위는 황제가 그 임면권을 가졌으며, 1백석 이하의 이른바 두식이나 좌사의 하급관위는 해당관청의 장관이 선임권을 갖고 있었다. 이들 하급관리는 연차나 공적으로 승진하는 것이 아니고 2백석 이상의 관위에 오르려면 원칙으로 선거에 따라 추천되어 낭관을 거쳐서 상급관으로 승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두식, 좌사, 직과 낭관은 확연히 구별되어 관료 위계 질서가 연속이 아니라 단절되고 있었다.

낭관(郎官) 임용에는 다음 다섯 종류의 방도가 있다.

1. 북변 제군 출신의 양가자 즉 호족, 고위관료의 자제로 무술이 뛰어난 자.
2. 3년 이상 고급관료(공경(公卿)에 상당)재임자는 자제 1명을 낭관으로 임용(전한 말 애제(哀帝) 때 폐지, 임자법(任子法)).
3. 기근 때 곡물 600석 또는 30만전 이상을 헌납한 자.
4. 효렴(孝廉),현량, 방정, 무재, 고재 등으로 추천되어 시험에 합격한 자.
5. 삼공(三公), 대장군(大將軍), 구경(九卿), 태수, 군 도위 등 중앙과 지방의 고급관료에 벽소 되거나 황제에 징소되어 발탁된 자.


이 가운데 4가 이른바 향거리선제(鄕擧里選制)로 한대 관료제의 기본 뼈대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후한 때 부터는 각군에서 효렴으로 추거(推擧)되어 낭관에 임명되는 정식의 길보다도 5의 벽소나 징소가 관료계로 진출하거나 승진하는 데 유리하여 오히려 이 길이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따라서 지방에서 세력 있는 자, 재력 있는 자 또는 혈연관계를 통해서 삼공, 구경과 같은 중앙의 유력한 고급관료가 천거하여 관계에 진출해서 그 고리(故吏)가 되었다. 또 후한 때는 유학의 교양이 관료 임명에 필수 조건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학의 대가는 고관에 재임한 자가 많았다. 이런 유학자의 가르침을 받은 자를 문생이라고 한다. 따라서 유력한 관료의 고리, 문생이 되는 것은 또한 관료 진출을 위한 유력한 수단이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관계에는 파당이 생기고 상호 제휴하면서 또는 대립하며 전제군주의 관료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태가 진전하게 되었다. 후한 말에 일어난 당고(黨錮)는 여기에서 배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조의 아래에서 일했던 인사들의 대부분도 위에서 말하는 4와 5의 방법으로 임용되었는데, 이는 당시엔 일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일부 몇몇 사례에서 능력만 보고 뽑은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지방의 세력이나 혈연관계를 업고 임용되었다고 봅니다. 단지 좋은 환경에서 자라난 인사들인 만큼 능력이 좋은 인재가 많았던거죠. 이들의 능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그들이 쉽게 임용된 데에는 환경적인 측면도 큰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예를들면 순욱과 순유를 배출한 순씨 가문도 당대의 유력 가문이었다죠.
(여담이지만 유비가 높게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당대의 유력가문의 양자였던 환경 덕에 일찍이 효렴에 추천된 조조(원술이나 손견, 손책부자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당대의 유력가문에 직접 벽소된 원소(사마의도 여기에 속합니다)와는 다르게, 유비는 일개 지방 유학자의 문하생으로 시작한 인물이거든요.)

유비든 조조든 인재의 등용에 있어 가장 주를 차지한것은 기본적으로 한대의 인재등용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능력만을 보고 일천한 출신의 인재를 등용한 예도 있는 경우도 둘 다 있구요. 단순히 조조만 능력위주의 인재선발을 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599 2011-04-16 12:45:13 2
게시판 분위기가 점점 나빠지는것 같군요. [새창]
2011/04/16 12:38:32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엔, 현재 오유의 시사게시판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봅니다.

역사가 과거로부터 현재를 배워 나갈수 있는 학문이니 만큼, 시사게시판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 역사게시판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598 2011-04-16 12:42:46 0
재야로써 한마디. [새창]
2011/04/16 11:59:30
ㅇㅇΩ /
현재 게시판에 환빠 라는 단어가 너무 나도는 느낌은 저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사용자분들이 함꼐 고쳐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본인이 쓰는 단어(식민사학)부터가 이미 상대를 비방하면서, 다른사람이 쓰는 단어가 기분나쁘다고 하는것 자체도 문제 아닌가요?

예의를 요구하기 전에 자신도 예의를 차려주셨으면 하네요.

597 2011-04-16 10:28:44 0
광주노총각님의 반론에 대한 반론 [새창]
2011/04/16 02:05:47
대한독립만세 /
아래에 있는 제 글부터 좀 읽고오세요. 광주노총각님의 글은 보류게시판으로 이동해서 제가 보여드리긴 힘들지만, 이 글은 광주노총각님이 반박글 올린것에 대한 반박입니다.
요점은 이덕일씨가 주장하는 하북성 창려군이 낙랑이라는 것은, 313년 고구려에 의해 축출된 낙랑이 그곳으로 사군된 곳으로, 이전의 한사군과는 다른 곳이다 라는 것입니다.

딜레마/
솔직히 초반 부분 이후의 내용은 길어서 다 읽기도 힘들고, 반박을 하려니 윗글처럼 해석이 잘못되거나 글자가 바뀌어 있어서 원전을 찾기도 힘드네요.
596 2011-04-16 02:31:09 0
광주노총각님의 반론에 대한 반론 [새창]
2011/04/16 02:05:47
※ AD 313년 진晋의 현도태수玄菟太守였던 배무裵武가 죽자 진晋은 AD 309년부터 관리들끼리 상호 살육전이 벌어져 혼란에 빠 진 상태여서 후임 태수太守를 임명할 겨를이 없었다. 이와 같은 내부 사정을 탐지한 고구려는 AD 315년 현도군玄菟郡을 공격 해 멸滅하니 배무裵武의 동생 배의裵薿와 아들인 배개裵開는 모용외慕容廆에게 귀부歸附한다.
-> 위 해석과 제 반론을 종합해보면, 배무가 현도태수가 되었고 아우인 배억은 스스로 창려태수를 칭합니다. 하지만 배무가 창려군에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죽어버려 수도로 다시 불려가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배부의 아들 배개와 함께 상여를 호송하여 '남쪽'으로 이동했지만, 요서에 도달하자 길이 막혀서 어쩔수 없이 모용외에 투항하네요.
이렇게 상황을 해석해 보니, 당시 현도군과 창려군은 요서의 북쪽에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긴 하네요.

"전제前提로서『모용외의 근거지와 주 강역을 대능하 방면을 차지하고 중심 근거지는 요서의 현 창려군昌黎郡이며...』라고 추정할 시점에서부터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 배억과 배개가 모용외에 투항한 곳이 요서에 도달한 이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모용외의 중심근거지가 요서의 창려군이라고 추정한건 조금 잘못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요서에 있었다는 사실 만큼은 부정할수 없을것 같네요.
595 2011-04-16 02:11:48 0
광주노총각님의 반론에 대한 반론 [새창]
2011/04/16 02:05:47
참고로 원문의 확인과 해석은 파성넷을 참조했습니다.
594 2011-04-16 01:15:51 0
[새창]
참 징하다.
593 2011-04-16 01:12:37 0
산해경이란? [새창]
2011/04/15 21:50:21
정말 산해경이 어떤 책인지를 안다면, 산해경을 출처로 지리적 논박을 하지는 않을텐데 말이죠.
592 2011-04-16 01:11:35 0
[새창]
당신 주장이 오유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것부터 알아야지, 이사람아.
591 2011-04-16 01:09:53 0
보급이라는 폭군 [새창]
2011/04/16 08:50:37
게임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그동안 많은 게임이 있었지만 보급과 물자에 대한 개념을 게임에 잘 구현한것은 거의 없죠.
개인적으로는 문명4와 5의 유닛 유지비 개념이 그나마 보급과 조금 비슷하다고 보긴하지만, 먹을것을 옮긴다는 개념과는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구요.

개인적으로 이런 개념을 잘 구현한 전략 시뮬레이션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래도 힘들겠죠?
590 2011-04-16 01:09:53 0
보급이라는 폭군 [새창]
2011/04/16 00:50:39
게임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그동안 많은 게임이 있었지만 보급과 물자에 대한 개념을 게임에 잘 구현한것은 거의 없죠.
개인적으로는 문명4와 5의 유닛 유지비 개념이 그나마 보급과 조금 비슷하다고 보긴하지만, 먹을것을 옮긴다는 개념과는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구요.

개인적으로 이런 개념을 잘 구현한 전략 시뮬레이션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래도 힘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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