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9
2021-07-15 04: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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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에서는 이익형량이라는 개념이 있죠.
인간의 기본권은 마땅히 지켜야 할 가치이지만,
그러한 가치들이 서로 충돌해서 양쪽 모두를 지킬 수 없을때,
어떤것이 우선해야 할지를 따지는 것을 이익형량이라고 합니다.
한편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함으로써 포기하게 되는 것은 그 선택의 비용에 포함된다는 개념이죠.
아무튼, 우리의 삶은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에는 우선시되는 가치와 잃어버리는 가치가 있으며,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죠.
어떤 선택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모든 선택에서 뚜렷한 정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죠.
그 정답이라는 것도,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가에 대한 답일 뿐,
무엇이 완벽하고 이상적인 선택인가에 대한 답은 아닐 것입니다.
정의는 무엇인가에서 제시한 사례도, 무엇이 이상적인 정답이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죽이는 것이,
과연 죽음에 이르는 한명에게도 정의로운 일인가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기차선로 사고실험에선 많은 사람들이 경로를 바꿔 한명을 죽게하는 것을 택하죠.
한편 마이클 센델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른 또 하나의 사고실험을 제안합니다.
각자 다른 부위의 결손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5명의 환자가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장기를 즉시 이식하면 살릴 수 있지만 절차를 거쳐 장기 기증자를 찾을때까지 이들의 목숨은 버텨주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마침 이들 모두에 이식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와서 옆 병실에 마취된 채 잠들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장기를 적출하면 이 사람은 죽겠지만, 5명의 다른 환자들을 100%살릴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의사라면, 5명을 살리기 위해 이 사람의 장기들을 적출하겠습니까?라는 거죠.
5명과 1명의 목숨을 저울질 한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이번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기적출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합니다.
공리주의적으로 보면 다수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맞죠.
그러나 우리의 직관은 그게 항상 옳은게 아니라고 외칩니다.
이 사고실험에서, 우리의 직관은 그의 장기를 적출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부당하고 악한 행동이라고 느끼기에, 장기를 적출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어떤 선택을 하는데에는 결과만이 고려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죠.
의사의 사고실험을 경험하고 다시 기차선로의 실험으로 돌아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로를 바꾸지 않고 5명이 죽게 하는 선택을 합니다. 기차 선로를 바꾼다는 행위를 함으로써, 죽을 운명이었던 5명을 살리기 위해 죽지 않을 운명이었던 1명을 죽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여전히 선택지를 바꾸지 않고 1명을 죽게 하겠다는 사람들도 다수 있습니다. 단지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온 1명과는 달리, 기차 선로에 선 1명은 이미 나머지 5명과 함께 운명의 기로에 서있기 때문이며, 장기적출과는 달리 선로를 바꾸는 행위는 직접적인 살인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완벽히 정의로운 선택은 없습니다.
어떤 선택도 모든 가치를 지켜내지는 못합니다.
어떤 기준도 모든 상황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죠.
우리는 선택으로 인해 잃는 것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선택으로 인해 훼손되는 가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선택, 도덕적으로 완벽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죠.
그것응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지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뇌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뇌야 말로, 윤리적인 인간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