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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7 21: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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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식 작위는 공후백자남으로 딱 떨어지지 않고, 지역별로 명칭이나 위상이 다른 경우도 많았음.
그리고 작위는 영지랑 연동된 것이기 때문에 혼인 상속 등으로 여러 작위를 겸하는 경우도 많아서
공작인 동시에 백작, 남작일수도 있는 거였고, 기사이면서 동시에 왕일수도 있었으며,
같은 급의 작위를 여러개 보유하고 있을 수도 있었음.
예를들어 영국 찰스 왕세자의 공식 칭호는
"웨일스 공, 체스터 백작, 콘월 공작, 로스시 공작, 에든버러 공작, 캐릭 백작, 메리오네스 백작, 렌프루 남작, 그리니치 남작, 아일즈의 영주, 스코틀랜드 대공이자 섭정, 가터 훈장의 기사, 씨슬 훈장의 기사, 바스 훈장의 대십자기사, 오더 오브 메리트의 회원, 오스트레일리아 훈장의 기사, 여왕 공로 훈장의 컴패니언, 여왕 폐하의 영광스런 추밀원의 의원이신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자 전하"라고 함.
공후백자남 중 유럽식 작위에 그나마 대응하는건 공작, 백작, 남작 정도이고 후작, 자작은 구분이 다소 모호하고 사례가 매우 적다고 합니다.
대공 : prince, grand duke, archduke 등의 번역어. 프린스는 왕자라는 뜻도 있지만 소국의 군주를 뜻할때도 있음.
다 똑같이 대공이라고 번역했지만 지위는 케바케로 천차만별이라고 함.
공작: prince, duke의 번역어. 로마 군단장을 지칭하는 Dux에서 유래한 작위라고 함.
백작 : count, earl, graf 등의 번역어. 중앙에서 지방으로 파견하던 행정관 겸 판사에서 유래한 작위. 한국으로 치면 원님(사또)랑 비슷함..
남작: baron의 번역어. 바론은 자유민이라는 뜻으로, 작은 촌락의 촌장쯤 되는 직위에서 유래한 작위..
원래는 관직이거나 직책이었지만 봉건사회가 되면서 세습되는 작위로 변질된 겁니다.
동서양의 봉건제는 서로 전혀 다른 사회제도이지만, 주군이 가신에게 영지를 나눠주는 피라미드형 계급구조라는 점이 비슷한데, 왕국을 여러개의 공작령으로 나누고, 공작령을 여러개의 백작령으로 나누고, 백작령을 여러개의 남작령으로 나눠
직할지를 빼고 봉신에게 맡겨 다스리게 한 제도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작은 자신의 공작령에 속한 백작들의 주군인 동시에, 자신이 직할로 다스리는 백작령의 백작일수도 있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왕 밑에 도지사쯤 되는게 공작이고, 시장쯤 되는게 백작, 동장이나 마을이장쯤 되는게 남작이라고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후작과 자작으로 번역되는 작위들은 대체로 백작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후작: marquis, markgraf, pfalzgraf 등의 번역어.
marquis와 markgraf는 변경백이라고도 번역합니다.
말 그대로 변경mark의 백작graf이고, marquis도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국경지대의 백작령들은 군사적 중요도가 높았고,
그만큼 군사력도 강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백작령에 비해 중요하게 취급되었고, 이때문에 백작보다 높은 후작이라고 번역된 것 같습니다.
한편 pfalzgraf는 궁정백이라고도 번역하는데, 국왕 직속의 가신들로써 궁중에서 국정업무를 맡은 신하들이었는데, 항상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 설명된 후작에 대한 설명은 궁정백에 대한 설명에 가까워 보입니다. 봉건사회가 오래 지속되면서 백작위가 남발되어 코딱지만한 영지도 백작령이 되니까, 좀 크고 유서깊은 영지의 백작들은 pfalzgraf를 자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자작: viscount의 번역어. 직역하면 vis부 count백작입니다. 즉 백작의 부관쯤 되는 직책이었습니다.
남작baron이 작은 영지를 다스리는 가신이었던데 비해서,
바이카운트는 백작의 업부를 돕고 백작의 부재시 대리를 하는 가신이었습니다.
백작이 세습되지 않는 행정관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작도 비세습되는 직책이었지만,
백작이 세습되기 시작하면서 자작도 자연스레 세습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백작을 보좌할 뿐이고 영지가 없는 작위였지만, 여러 이유로 백작이 공석이 되어
자작이 대리직으로, 사실상 영주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