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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4 10: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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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서 진중하고 유익한 의견 내 주시는데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판단에 있어서 명백하게 사실인 부분만 취해야 한다는 점은 저도 동의하고, 늘 그러기 위해서 가능한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할때, 글을 쓸 때 두번세번 검토하고 자기 검열을 합니다.
그러나 제 본문 글에서의 경험에서도 그렇듯이, 명백하게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갈릴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 얼마나 많은 증거와 객관적인 사실을 제시해도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는 숱하게 많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본문글에서 내 기억과 눈에 보이는 것이 친구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았고, 나를 미친사람 취급하는 행동으로 인해 더이상 관계유지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음을 서술했을 뿐이지, 그 친구가 나쁜놈이라는 가치 판단을 직접 서술한 바는 없습니다.
물론, 그런 가치판단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러나 그 가치판단은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글 전반의 분위기를 통해 암묵적으로 전달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만약 '님이 있지도 않은 사실로 저를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님께서는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방귀뀐 사람의 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에 대한 저의 기억'과 '친구 얼굴의 반창고'로부터 '친구 얼굴의 점'이 명백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면,
'방귀 냄새'와 '방귀 소리'로부터 누군가 방귀를 뀌었다는 사실 역시 명백한 사실로 판단 될 수 있겠죠. 그러나 님께서는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방귀 냄새와 방귀 소리가 명백한 것이라도 둘중 누군가 방귀를 뀌지 않았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신 거죠.
그렇다면 거꾸로, 친구 얼굴의 점에 대해서도 저의 착란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겁니다.
결국 '명백하다'는 판단은 증거력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명백한 사실이 무엇인가에 판단은 갈릴 수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많은 증거를 가져와도, 근본적인 수준에서 끝없이 의심하면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조차 뒤집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가장 명백하고 객관적인 학문으로 불리는 수학에서, 1+1=2라는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조차
전제를 의심하고 전제의 전제까지 부정하면 증명이 불가능해집니다.
따라서 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명백한 사실만을 취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명백한 사실에 대한 판단조차 주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놓인다고 하여 나의 주관과 주장을 관철하는 자세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명백하다고 판단한 진실을 그렇게 쉽게 놓아버린다면,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왜곡하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진실이 뒤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