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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6 0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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앜쿰마/찰나의깨달음님의 입장을 저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인간이 가진 지식의 총합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이 경험하는 삶이란 그러한 보편 지식에는 어긋나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우연적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왜 하필 이런 모습의, 이런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고 있고, 왜 무구한 시대와 수많은 문화 중에 하필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게 되었나..
그것은 논증할 수 없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수많은 가능성 중, 우연히 현실화된 그 하나일 뿐이죠.
그리고 그 우연적 운명이 내 삶을 좌우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에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고 합시다.
인간의 지식은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또는 동성애를 발현시키는 유전자가 진화론적으로 어떻게 존속 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종족으로서 인류의 번영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설명할 수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총체로서, 보편으로서 인류에 대한 지식은 그 개인의 삶을 온전히 설명해 줄 수 없습니다.
그 메커니즘은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동성애자의 삶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왜 동성애자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이성애자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나는 왜 남자로 태어났을까?'
이런 질문들은 결국 논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 어떻게 그런지 설명할 수 없어도 나는 지금 이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야만 합니다.
'내가' 어떤것에 대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이 또한, 보편으로서, 객관으로서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관으로서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은 대단히 특수적인 것이며, 보편으로 환원할때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 봅니다.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그 사람의 그냥 밥먹는 모습에서조차 어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경험을
뇌과학으로, 심리학으로,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내가 느끼는 사랑의 경험의 가치를 좌우하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가치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논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지만,
그러한 논증 불가능성이 그것을 본질적으로 무가치하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편을 전제로 끊임 없이 논쟁하고 논증하려고 하는 것 또한 무가치한 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어떤 합의점을 발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두분이 말씀하시는 범위를 벗어난 의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