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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6 16: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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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싱어...책도 정말 좋고, 저는 이 사람의 사상에 강하게 동의합니다.
다만, 동물의 권리가 인간의 권리와 동일 선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으로 유명하죠. 실천 윤리학은 말 그대로 윤리의 실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는 피터싱어의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제 나름대로 정리하고 이해한 것을 풀어놓은 것입니다.)
아무리 보편타당한 정의, 자연법적 정언명령에 따른 올바름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결국 그 윤리는 실천하는 각자의 실존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아무리 '살인은 나쁘다'라는 정언 명령이 있어도 세상엔 수많은 살인자들이 있고,
자유,평등이라는 보편 타당한 가치 아래 차별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도
여전히 인종차별 주의자들과 성차별 주의자들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결국 객관적이고 이상적인 윤리의 존재 여부와 별개로,
결국 당신이, 그리고 '내'가 윤리를 실천하는가만이 진정한 윤리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그렇기에, 피터 싱어는 무엇이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름에 대해서 당신에게, 그리고 저에게 설득하고 공감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터 싱어의 저서들을 읽어보면 논리적 설득 이외에도,
학대 당하는 동물들의 끔찍한 처우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독자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고 그 입장에 대한 공감에 호소하는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동물 해방이라는 것도 그런 차원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터싱어는 정말로 동물의 권리가 인간의 권리와 동등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동물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와 대등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피터 싱어가 주장한 윤리적인 하노이의 탑에서도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윤리는, '나'라는 실존의 내면의 동기로 부터 시작하여 내 가족,
내 친지들에 대한 공감에서 우러나온 윤리적 행위로 이어지고,
공감의 범위를 점차 확장시켜 나감으로서 마침내 세계윤리의 차원(모든 생물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확대된 윤리적 고려 범위)
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에게는 적용하면서 동물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이중적인 윤리잣대를 비판 하는 겁니다.
저와 님의 내면에 있는 윤리적 동기에 호소 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노이의 탑은 분명히 확장의 방향성이 존재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세계윤리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개인의 내면적 윤리동기가 존재해야 하고, 가까운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에 대한 공감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행되어야만 확장이라는 것이 가능한 겁니다.
어찌보면 이기적인 개념이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자신의 윤리적 동기를 만족시키기 위한 행위이니까요.
그럼에도 절대적인 이기심이 아닌 공리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노이의 탑, 윤리적 범위의 동심원은 궁극적으로는 각자의 실존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결국 모든 사람들은 윤리적 고려 대상을 다르게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인간은 자신과는 '서로 다른' 이들을 차별해 왔습니다.
이것은 결국 분열과 갈등, 경쟁에 의한 공멸을 가져온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제 인간은 서로 다름을 극복하고 공존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각자를 위해 보다 더 나은 삶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동물은 왜?
동물을 차별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 외의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동물들과 동등하지 않으며, 동물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인간이 아닌 고슴도치에게는 인간보다 제 새끼가 더 예쁘며,
각각의 동물은 저마다 또한 인간과는 다른 가치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윤리의 고려 범위를 확장하기 이전의 단계로서, 인류의 가치를 우선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와는 다른 존재들, 그것이 인간이 되었든 동물이 되었든
그들은 각자가 하나뿐인 생을 살아가는 유일한 실존이며,
각자에게는 우리의 그것과 대등한 가치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우리와 다른 존재들과 생존 경쟁, 또는 공멸의 위기에 놓일 때
공존을 위한 길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쨋거나, 결국 최종적으로 어디까지 윤리적 고려의 범위에 넣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윤리의 실천자인 각자의 실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피터싱어는, 또는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동물들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의 양심에 호소합니다. 그들이 우리와 대등한 가치체계를 가진 존재임을 알고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겠느냐고요.
과거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백인 이외의 인류를 유색 인종, 또는 인간과 닮았을 뿐인 유인원으로 격하하며
차별하고 폭압했던 것처럼,
인간들은 인간이 아닌 생명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며 그들을 죽은 것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도 인간의 이익을 우선시 할 것인가는 결국 각자의 판단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외면하고 모른체하는 것은 그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르는 일들에 대해 직시해야만 합니다.
애써 외면하고 저지르는 일들이, 우리를 무고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나는대로 막 쓰다 보니 횡설수설이군요.